‘십자가에서 이룬 영혼 구원, 속사람 구원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영혼 구원과 신앙생활의 출발점이면서 성경의 핵심 진리이다.
2000년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는 두 가지 영적 사실이 성취됐다. 하나는 영혼 구원이 완성됐으며, 또 다른 하나는 신앙생활의 핵심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각 개인의 속사람도 죽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룬 영혼 구원이 다름 아닌 속사람 구원이다. 성경은 사람이 영과 혼과 몸으로 이뤄졌다고 말한다. 영혼 구원은 사도행전의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는 기록처럼 십자가에서 이룬 사실을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은 결과이다. 몸의 구원은 예수 재림시 받게 된다.
갈라디아서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씀은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된다. 구원받은 후 직면하게 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나’를 어떻게 받아 들이느냐에 따라 성화(예수를 닮아가는 삶)의 과정은 달라진다.
나는 현재 살아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나는 누구이며, 언제 못 박혔는지 궁금하지만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뒤 따른다. 그렇다고 상징으로 보기에도 무리가 따른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나’라는 말씀이 상징인가? 아니면 사건으로서 실제라고 생각하는가?
필자는 갈라디아서 말씀의 성경 전후 문맥과 전체 흐름과 성경 특성상 실제 사건으로 판단하고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수년 동안 관련 말씀을 묵상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십자가에 내가 그리스도와 못 박혔다, 속사람이 실제 죽은 영적 사건’
묵상과 기도를 통해 매일 십자가에 나가서 ’내가 죽었음을 시인‘했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말씀의 근거가 부족하니 당연한 현상이다. 그렇지만 지속적이면서 끈질기게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묵상해 나갔다.
그러던 중 베드로전서 영혼 구원말씀에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힌 사람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에고(ego)인 내가 아니다. 그러면 누구인가? 또 다른 나(self)인 속사람이다. 성경은 사람을 속사람과 겉사람 등 최소 둘 이상으로 분류한다.
’옛사람을 성경NIV는 ‘old self’로 기록'
2000년전 그리스도께서 못 박혀 죽은 그 십자가에 속사람인 나도 못 박혀 죽었다. 내 육체가 못 박혔다는 뜻이 아니다. 내 육체가 못 박혔다면 내 죄의 대가를 내가 다 치뤘다는 의미이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필요 없게 된다.
그래서 성경 갈라디아서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서 십자가에 내가 못 박혔다는 내용은 속사람이 못 박혀 죽었다는 의미다. 상징이 아니다. 영적 사건이기에 믿음으로 바라볼 때 사실 확인이 가능하다.
로마서는 갈라디아서의 기록을 다른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로마서의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기록을 살펴보자. 옛사람은 육신의 내가 아니다. 영어(NIV)성경에 옛사람을 ‘old self’라고 기록해 옛 자아이며 속사람임을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자아는 속사람이며 이미 죽었기에 옛 자아이다.
’ 십자가에서 죽은 속사람이며 옛자아 사건, 신앙생활 핵심 진리‘
그러면 다음 성경도 풀리게 된다.
갈라디아서의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은 속사람인 옛 자아가 죽었고, 내 안에 주인이 없음을 밝힌다. 그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 오셨다. 모두 영적 사실이다.
고린도전서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라고 기록하며 사도행전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거듭난 그리스도인의 모임) ”라고 기록했다.
성령이 그리스도인에게 들어와 계신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영적 사실이다. 성경에는 이처럼 많은 영적 사실이 기록됐다.
고린도전서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우리 몸을 성령의 전이라고 명시했다. 영혼 구원받은 사람에게 성령이 거한다는 사실은 성경을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하다. 만약 상징으로 받아들이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기는 어렵다.
내가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다는 영적 사실을 확실히 받아들이면 흔들리지 않는 신앙 성장의 길로 들어선다.
’성경과 자아는 매우 밀점한 관계, 모든 사람 자아간 내면소통‘
이를 상징으로 받아들일 성경적 근거가 없다. 성경 전체적인 흐름을 통해서 십자가에서 이룬 복음과 십자가에 내가 죽은 사실, 성령이 내 안에 거한다는 사실 등은 모두 영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시점부터 흔들리지 않는 신앙 성장이 시작된다.
신앙 생활이 흔들리는 이유는 핵심 진리인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상징으로 받아들여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과 자아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앙 생활의 핵심 진리를 알기 위해서도 자아를 알아야 한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을 매일 기도 가운데, 묵상 가운데, 말씀 가운데 확인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의 일상이다. 신앙 성장의 출발점이 십자가인 이유이다.
모든 사람은 본인의 인지여부와 관계없이 겉사람인 나와 속사람인 나와간에 내면 소통을 통해 살아간다.
그리스도인은 속사람이 죽었음으로 자아간의 소통이 쉽지가 않고 불편하다. 내 안의 주인이 성령이기에 에고(ego)인 겉사람 나는 내 안의 주인 성령과 소통을 할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신앙생활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며 성령과 대화의 삶이다. 속사람이 죽었다는 사실과 성령이 내 안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시점부터 신앙생활이 달라진다. 내면의 변화가 시작된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사도바울, 십자가에 속사람 죽은 사실 매일 묵상’
그러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은 사실을 확인하고 받아들인 후에도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음을 매일 묵상하면서 기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혼 구원처럼 단번에 이뤄지는 믿음의 종류도 있지만 매일 수시로 내가 죽었음을 시인하고 내 안에 성령 거주를 시인하며 확인할 때 믿음에서 믿음으로 성장하는 종류도 존재한다.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는 내용에는 십자가에서 옛 자아가 죽었음을 매일 확인하며 시인하는 의미도 포함됐다.
내가 나에게 옛 자아가 죽었음을 시인하면 내 영혼은 물론이거니와 육신도 따라가게 된다. 신앙의 힘은 믿음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영과 혼과 몸으로 창조하면서 다중 자아체로 만들었다. 자아 간의 대화가 가능하며, 성령과 내 자아간에 대화가 시작되면 육체는 성령과 소통한 내용대로 이뤄지게 된다.
뇌 과학자나 심리학자들은 단일 자아체 즉 자아가 하나면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실증했다. 창조주께서 사람을 최소 둘이상의 자아체로 창조한 이유는 십자가에서 죽은 옛 자아의 성품이 아닌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