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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투기 자본의 희생양, 대우
김우중전회장 세계경영, 초국가 기업과 마찰가능성
 
박성민   기사입력  2019/12/16 [11:29]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기 1년전 대우의 해외평가는 19987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500대 기업중 18위로 삼성을 제치고 국내 서열 2위 그룹이었다.

 

대우는 자동차, 전자, 조선 등 한국 주요산업 전 분야에 걸쳐 41개 계열사(1999년말기준)를 거느렸으며 유럽지역을 비롯한 해외 시장 개척의 최전선에서 정부의 수출주도 정책 코드와 가장 잘 맞춰온 기업중 하나였다.

그런데 19998월 주)대우를 비롯해 자동차, 전자, 쌍용자동차 등 주요계열사 12개사가 채권단에 의해 워크아웃이 결정되면서 그룹이 공중 분해되었다.

 

그룹의 공중 분해 원인에 대해서 지난9일 작고한 대우그룹 김우중 전회장은 20148'김우중과의 대화-아직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대화록을 통해 당시 정부에서 부실기업으로 몰아가며 기획 해체 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회장은 1997년 대통령 당선이후 김대중후보가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한 자문을 구할 정도로 친분 관계가 유지되었으나 IMF체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당시 경제 관료들이 김 전회장에게도 기업의 구조조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반면에 수출 확대를 요구하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하는 김 전회장과 이견 발생은 어쩌면 당연했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와 기업간의 스타일이 달랐다.

 

김 전회장은 이런 의견대립으로 경제 관료들이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대우를 부정적으로 보고한 후 수출 자금등 금융권의 자금지원이 묶이고 시장의 분위기를 부정적으로 몰아가 계열사 매각마저 여의치 않아 결국 그룹이 공중 분해되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당시 경제관료인 이헌재 전부총리는 2012'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저서를 통해 대우그룹 해체와 관련해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대우가 자구노력에 소극적이었으며 부실 등 심각한 재정난으로 인해 시장 신뢰를 잃어 그룹이 공중분해 되었다고 주장했다.

 

강봉균 당시 경제수석도 부실경영과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었던 게 대우그룹 해체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말한바 있다.

 

결과적으로 이헌재 전부총리와 강봉균 전경제수석의 주장은 김 전회장이 정부 정책에 소극적으로 나와 그것이 결정적으로 그룹공중 분해를 불러 왔다는 것이다.

이 말은 김전회장의 주장처럼 김전회장과 당시 정부관료들의 외환위기 극복 방법론의 차이로 대우가 자금줄이 막혀 공중 분해되었다는 주장이 타당성이 있다.

 

자수 성가한 김 전회장이 IMF체제하에서도 쌍용자동차 인수 등 공격적 경영을 멈추지 않았던 그가 그룹 공중 분해 위기를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우둔했다고 볼수 있는가? 그럴수는 없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대중 경제의 책자를 집필할 정도로 거시나 미시 경제에 박식한 지식을 갖고 있어 대기업의 공중 분해가 국내 경제에 미칠 파장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대우 그룹의 공중분해 결정은 김 전대통령도 어찌할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대우를 비롯한 삼성 등 국내 대기업들은 정부와 금융권의 비정상적인 계열사간 순환 출자가 허용되어 문어발식 그룹확장을 당연시 여겼다.

993월 대우그룹은 자기자본비율이 50%, 그룹 부채비율이 400%였다. 이때는 정부의 보호아래 기업을 운영할때인지라 부채비율 400%는 그리 높지 않은 비율이었다는 것이다. 즉 당시 대우만 부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우그룹 해체 당시 대기업들의 계열사간 순환출자를 막고 금융권의 지원을 중단하면 넘어지지 않을 대기업이 아마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외환 위기이후 정부는 각기업의 부채비율을 200%로 관리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의 보호아래 세계경영을 기치로 내세웠던 대우는 왜 공중분해 됐는가?

그 답은 여기에 있다.

당시 김대중후보는 대통령 당선이후 국제 거물급 투기자본 인사인 퀀텀펀드 조지 소로스회장을 동교동으로 초청해 IMF극복을 위한 회담을 가졌다. 유대계인 조지소로스 회장은 그이후 한국에 달러를 지원해 외환위기를 극복할수 있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런데 IMF(국제통화기금)를 통해 국제 금융자본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그룹 해체를 통한 다국적 기업의 국내 기업인수 및 높은 수익성이 보장된 금융권의 인수였을 것이다.

특히 대우는 90년 대우 자동차 르망이 국내 뿐아니라 유럽과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서 히트를 치면서 해외 시장 개척에 기업의 사활을 걸었다.

사하라에서 시베리아까지대우제국 건설을 이루며, 대우 일터에는 해가지지 않는다는 광고가 당시 대우의 기업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효자 기업을 경제관료들과의 마찰로 거시경제전문가 수준이었던 김대중 전대통령이 그룹이 해체되도록 방치할 수가 있었을까? 그럴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룹 해체의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였을까?

대우 김우중 전회장이 해외시장 개척과정에서 러시아와 유럽등지의 정치 경제등 거의 전분야를 쥐락펴락하는 유대자본인 로스차일드가와 같은 다국적 대기업과의 마찰로 눈 밖에 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여건하에서 우리 정부가 구제금융을 신청한 이후 그해 12월 월가의 자본가들이 모여 한국 부실 계열사 매각을 포함한 대우그룹의 해체를 결정하고 IMF를 통해 결정된 사실이 전해 졌고 우리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이들의 요구대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 월가는 국제 다국적 기업과 금융 투기자본의 본산으로 유대 자본이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다.

 

대우 김 전회장 작고하기 직전까지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대우를 희생시켰다는 주장이 사실 타당성이 매우 높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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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16 [11:29]   ⓒ ibib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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