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영적 신분 왕과 같은 제사장’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베드로전서에 기록된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놀랄만한 영적 신분을 알려준다.
여호와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피의 언약을 맺으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그의 소유된 백성과 제사장 나라로 삼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혈통으로 하나님의 선민이며 현재도 이스라엘은 성경적으로 선민이다.
신약시대에는 예수의 피로 죄를 용서받은 그리스도인을 창조주께서 택하신 족속으로 삼았고, 왕 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와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았다. 유대인을 선민 삼았던 창조주 하나님이 구원받은 사람을 왕 같은 제사장과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았다.
고대사회에서 왕과 제사장, 선지자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아 택함을 입은 특별한 존재였다. 왕은 백성을 다스리며 국가를 통치하는 일을, 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의 제사와 가교역할을 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때 그때 선민에게 전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구약에서 살렘왕 멜기세덱만이 왕과 제사장을 겸직했다’
신약시대 그리스도인의 신분 왕 같은 제사장은 왕의 존귀를 부여받은 제사장직 신분이 됐다는 의미다. 성경 창세기에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소돔지역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브라함을 마중 나와 축복했던 살렘왕 멜기세덱만이 왕과 제사장 신분을 동시에 지녔다. 멜기세덱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구약시대 위대한 왕 다윗조차도 가지지 못했던 왕 같은 제사장 신분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졌다. 대단하고 위대하며 거룩한 이름이다. 거룩한 나라의 의미는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별된 백성이라는 뜻이다.
그러면 왕 같은 제사장 신분인 그리스도인은 신분의 혜택만을 누리는 존재인가? 아니면 구약의 제사장처럼 실제 제사를 지내야 하는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베드로전서에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라”고 명령했다.
이 기록은 그리스도인이 상징적인 제사장이 아닌 실제적인 제사장직을 수행해야 함을 말해 준다. 제사장 일을 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어떤 제물로, 어떻게 제사를 드려야 하는가?
‘ 신약시대도 제사드리는 제사장들, 그리스도인’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장처럼 소와 양을 잡는 피의 제사를 드리라는 뜻이냐고 생각할수도 있으나 그런 의미가 아니다. 만약 피의 제사를 드릴려면 성소가 별도 지어져야 하지만 지금은 그리스도인이 성전이다. 건물로서 성전은 존재치 않는다.
제사장의 하는 일은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께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일은 동일하다. 다만 제물이 다르다. 그러면 신령한 제사란 무엇일까?
제사의 내용은 로마서에 기록됐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라고 소개했다.
구원받은 이후 왕 같은 재사장이 하나님께 드릴 제사는 바로 구원받은 내 몸이 제물이다.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릴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며 거룩한 제물이어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여호와께서 지정한 아론과 아론 자손만이 제사장직을 수행했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전 반드시 제사장을 거룩케하는 의식을 치뤘다. 그 이전에 성막에서 사용하는 모든 기구도 정결케 하는 의식을 치뤘고 그런 이후 흠없는 제물을 하나님께 제사로 바쳤다.
제사를 지낼 제사장의 거룩함과 제물의 거룩함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제사의 기본이다. 산 제물인 그리스도인의 몸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에 흠이 없고 거룩한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그렇다이다. 이미 흠이 없고 영적으로 거룩케 됐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했다. 만약 이사야1장의 마음이 없는 형식적인 제사를 드린 유대인처럼 그리스도인도 따른다면 여호와 하나님이 탄식하릴라.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스템이 아니다. 산 제물이 그리스도인이기에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제사가 된다.
‘제물도 제사장도 거룩케된 상태를 아는가?’
산 제물인 내 몸을 거룩케함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는 기록처럼 나에게 책임이 있는지 여부다. 만약 그리스도인에게 스스로 거룩케 할 책임이 주어졌다면 거룩하며 의로우며, 구별된 신앙 생활이 가능한 이후에 내 몸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또 거룩의 책임이 그리스도인에게 있다면 거룩의 기준은 어떻게 되고, 제물의 상태가 어떤 상태가 흠이 없는지 기준이 애매하게 된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산제사를 드리는 그리스도인은 자칫 교만한 사람으로 비춰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다 보면 구원받은 이후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산 제사로 자신을 드리는 그리스도인은 극소수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이 있는 걸까? 맞다. 거룩케한 책임이 나에게 없다. 이미 하나님이 준비를 모두 끝내놨다. 성경적으로 살펴보자.
구원받으면서 그리스도인은 죄의 유혹 약하고 익숙한 옛사람(old self)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갈라디아서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하리라. 영적으로 이미 옛사람은 죽었다.
‘성경 옛사람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새사람 입었다’
에베소서에는“너희는 유혹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old self)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고 말했다.
갈라디아서에는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고 기록했고 에베소서에서는 일상에서 매일 쉽게 하는 행동인 옷입는 모습으로 옛사람과 새사람을 설명했다.
에베소서는 옛사람과 새사람이 존재하고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심령부터 새롭게된 새사람을 입으라고 말한다. 입어야 할 주체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골로새서에서는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자”라고 설명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새사람을 입었다. 거룩케됐다는 뜻이다.
영혼 구원을 받으면서 옛사람(old self)은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래서 고린도후서의 기록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로 영적으로 이미 깨끗해졌다. 제사장으로서 이미 거룩케 됐음을 알려준다.
‘새로운 창조물 그리스도인, 지식에까지 새롭게 됐다’
내 안에 옛사람은 죽고 새로운 피조물(new creation)인 새사람이 들어왔다. 본래 내 안에 있던 심령도 새롭게 됐으며, 엣사람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새사람이 내 안에 창조됐다. 그래서 골로새서에 “자기를 창조하신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 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라”고 선언했다.
제사장인 그리스도인의 육체는 침례로 영적으로 거룩케됐다. 제사장으로서 영적으로 완벽하게 거룩케 됐다. 거룩한 제사를 드릴 재사장으로서 준비가 끝났다.
산 제사로 드릴 제물은 마찬가지로 새롭게 됐다. 제사장도 거룩케 됐고, 제물도 거룩케 됐다. 한 번의 역사로 제사장과 제물이 동시에 거룩케 됐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할수 있는 역사이다.
산 제사는 제물을 죽여선 안된다. 산 제사를 철저하게 이해하고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그리스도인 몸으로 지내는 산 제사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신앙생활중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내 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든 행동이 산 제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