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free will)에 대한 논쟁은 철학이 생긴 이래 지속되고 있는 난제 중에 하나 일 것이다.
누구나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은 난제. 자유의지가 인간에게 진정으로 있는가? ‘있다면’ 그 정도나, 범위가 어느정도 일까?
자유 의지가 인간에게 ‘없다면’ 인간은 누군가에 의해 프로그램화된 피조물에 불과하며 사람은 프로그램화된 삶을 살다가 왔던 곳을 돌아가는 존재일까?
자유의지는 오랫동안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논제 중에 하나이지만 그 어떤 해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것은 기준점의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의지는 창조주 하나님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문제를 이해하려 할 때 그 의문점이 풀리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자유 의지는 인간 스스로, 저절로 쟁취해서 얻은 것이 아닌 창조주로부터 받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자유 의지의 사전적인 의미는 ‘외부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고 자신의 행동과 의사 결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에 자유의지의 반대적인 의미는 유전적인 결정이나 그 환경적인 외부적인 영향에 의해 프로그램화된 결정된 의지(dertermined will)를 말한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아니면 존재하지도 않은 자유의지를 우리는 어떤 학자들의 주장처럼 있는 것처럼 아니면 프로그램화된 조작된 삶을 살아가는데도 이를 모르고 있는 것인가?
만약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그 중에 성경에 기록된 영원한 천국과 지옥은 인간의 스스로 선택이 아닌 외부적인 영향에 의해, 프로그램화된 것에 의해 결정되는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성경은 자기모순에 빠진 최악의 경전이 된다.
성경 디모데 전서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밝히고 있는데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이 또한 허위이다. 물론 이뿐만 아니라 기록된 성경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데 성경이 BC1500전부터 AD100까지 기록된 신구약 성경66권중 아직까지 인간의 과학 등 관련 지식이 부족해 밝혀지지 않은 것을 제외하고 에덴 동산에서 부터 노아의 방주를 잇는 성경의 기록들이 현재까지 모두 정확하게 맞아 가고 있음을 성경학자들과 증거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성경이 사실이라면 인간에 자유의지가 확실히 주어져 있음을 알수 있다.
자유의지의 존재여부는 성경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자유의지는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창세기2장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아담(사람이라는 뜻)으로 지키게 하며, 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명령을 내렸다.
초점은 선악과를 따 먹을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 의지가 분명히 아담에게 있다는 것을 확실히 성경은 명시하고 있다.
창세기2장16절에‘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임의로’는 영어 성경(NIV)에 ‘free’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져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자유의지를 부인하고 있는 ‘결정론“이라는 학설은 모든 일은 일정한 인과관계에 따라 발생하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정론은 모든 일이 인과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는 그 이면에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결국 천국과 지옥을 부인하며, 성경에 나타난 창조주의 심판을 부인하는 진화론적인 사고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물론 결정론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일에 인과관계는 반드시 있다. 그 인과 관계마저도 정해진 것이 아닌 인간의 선택에 따른 결과가 달라질 수 있어 결정된 인과 관계가 아닌 인간의 자유 의지 하에서 판단과 결정에 따른 인과관계일 수밖에 없다.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한한 자유 의지를 주셨는가, 아니면 유한한 자유의지를 주었을까.
성경은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규정하고 있으며, 자유의지 또한 창조주의 ‘허용과 한계’내에서임을 밝히고 있다.
시편39편에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생명은 창조주에게서 나왔다. 종속이론으로 따자면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다.
이미 창세기에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한계’를 정한 것이고, 동산 각종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으라는 것은 ‘허용’을 말하고 있다.
즉 인간에 주어진 자유의지는 ‘허용과 한계’내에서의 자유의지임을 알 수가 있다.
‘허용과 한계’ 내에서 자유의지다 보니 여러 가지 학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열역학 제2법칙, 엔트로피의 법칙처럼 우주 내에서 시간의 화살과 함께 무질서도는 증가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역으로 살펴본다면 질서는 반드시 질서를 유지할 힘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의 자유 의지는 자연발생적이지 않다. ‘한계와 허용’내에서의 자유의지 또한 지속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특정한 상태에서 유지가 필요하다. 외부적인 적인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피조물로서의 자유의지이다.
자유와 방종도 마찬가지이다. 자유라고 무한한 자유가 아니다. 질서 내에서 책임 내에서의 자유이다. 책임과 질서를 무시한 자유는 방종이다. 마찬가지이다.
자유의지도 창조주의 허용과 한계 내에서 자유의지이다.
혹자는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 전지전능한 창조주는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의지는 자유의지가 아니라고 의문을 나타낼수 있다. 자유 의지를 무한정의 범위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문제도 허용과 한계내에서 자유 의지를 이해를 한다면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허용과 한계의 자유의지는 창조주를 전제로 한다. 허용과 한계의 범위를 축소해서도 안된다. 예를 든다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히브리서9장)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한계이다. 자유 의지내에서 한계로 판단을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자유의지이다. 모든 사람에게 가장 정확한 예언이 있다면 ‘당신은 반드시 죽는다’는 예언이다. 그런데 이 예언으로 인해 당신의 자유의지가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는가?